여행 사진/경상도

하회마을을 한눈에 바라볼수있는 부용대에 올라~~

홀릭 (HOLIC) 2015. 8. 12. 20:01

 

2010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하회마을,,

하회 류씨 집안의 발상지이며 그들의 자손들이 머물러살고 있는곳이지요.

조선 중기 문신 서애 류성룡과 겸암 류운룡이 이 곳에서 태어났고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유교문화가

살아 숨쉬고 있는 상징적 공간으로 손꼽히는 곳으로써

가장 한국적이며 독창적인 문화를 간직한 씨족마을입니다.

하회마을을 한눈에 바라볼수있는곳이 부용대인데

부용대 에 올라봅니다...

 

 

 

 

 

 

부용대에 오르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하회마을에서 배를타고 건너는것이고

또 하나는 차로 화천정사쪽으로 접근하는것입니다.

예전에 배로 올랐을때는

http://blog.daum.net/b2bsuh/8165954

이번엔 차로 화천정사쪽으로 접근했습니다.

화천정사쪽으로 이동하며 바라본 부용대입니다.

당겨보니 아찔한 절벽위 부용대에 많은분들이 보입니다.

 

 

 

 

 

 

화천정사입니다. 

하회마을 홈페이지에서 설명을 가져와봅니다.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 諡號 文敬公 1539-1601년) 선생의

학덕(學德)을 흠모한 유림(儒林)들이,

정조10년(1786년) 9월에 경덕사(景德祠)를 세워 선생을 봉안하였고,

그 18년 뒤인 순조 3년(1803년)에 동리(東籬) 김윤안(金允安) 선생과

종손자인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 선생을 종향(從享)했는데,

두 분 모두는 사승 관계에 있다.

이후 100여 년 동안 춘추로 향사해오다

고종 5년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강당과 주소만 남았다.

 

 

 

 

 

 

류성룡이 이곳에서 징비록을 집필했다고합니다.

옥연정사를 돌아봅니다.

이 정사는 서애 선생이 노후에 한가로이 지내면서

학문을 하기 위해 세우려 하였으나 재력이 없어 짓지 못했다.

그러던 중 승려 탄홍(誕弘)이 스스로 10년이나 시주를 모아

선조19년(1586)에 완성한 우정의 산물로

선생의 덕망이 얼마나 두터웠는지를 알려주는 증거이다라고 소개됩니다.

 

 

 

 

 

 

 

 

 

 

 

 

 

 

 

 

 

 

 

 

 

 

 

 

 

 

 

 

 

예전엔 옥연정사옆 산길로 부용대를 오를수 있었으나

그쪽은 폐쇄되고 이젠 화천정사옆으로만 오를수 있었습니다.

부용대에 올랐습니다.

하회마을을 한눈에 바라볼수있는 멋진곳이지요..

 

 

 

 

 

 

세계문화유산 하회마을,,

다음엔 하얀눈이 쌓인 하회마을을 구경하고

부용대에 올라 하회마을의 설경을 구경해바야겠습니다.

 

 

 

 

 

 

 

 

 

 

 

 

 

 

부용대에서 하회마을 여기저기를 당겨봅니다. 

예전에 돌아본 하회마을의 모습은,,

http://blog.daum.net/b2bsuh/8165952

 

만송정 솔숲.. 

 

 

 빈연정사,

이 건물은 민속놀이 마당 바로 뒤에 자리잡고 있어서

화천을 사이에 두고 부용대와 겸암정사가 바로 건너다 보인다.

겸암 선생은 선조16년(1583년)에 진보현감으로 계셨는데,

모친의 병환으로 사퇴한 후 이곳을 서재로 사용하였다.

 ‘빈연(賓淵)’은 정사 정면에 위치한 부용대 아래의 깊고 맑게 흐르고 있는 못을 말한다

 

 작천고택..

류시주가옥은 현재 집주인 이름을 딴 것이나,

원래는 작천(鵲泉) 류도관공의 호를 따「작천고택(鵲泉古宅)」이라 불려왔다.

 

 

 

 

염행당

충효당과 더불어 하회의 남쪽을 대표하는 남촌댁(당호 염행당)은

 정종21년 지은 99칸의 건물로서 하회마을 남쪽 사대부의 가옥을 대표하였으나,

 

화경단 

이 건물은 정조·순조 조에 초계문신과

예조·호조 참판을 역임한 학서 류이좌(鶴棲 柳台佐)의

선고(先考)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류사춘(柳師春)공이

정조 21년(1797)에 작은 사랑과 좌우익랑을 처음 건립하였다

 

 

 

 

원지정사..

서애 선생이 선조 9년 (1576년)에
잠시 조정에서 물러나 있을 때
만송정이 한 눈에 들어오는 마을 북쪽에 짓고 학문을 했던 곳으로
은퇴한 후에는 정양하던 곳이기도 하다.
원래 원지(遠志)는 한약재로 심기(心氣)를 다스려 정신의 혼탁과 번민을 풀어주는 소초(小草)를 말하는데,
하회마을의 안산이기도 한 원지산(遠志山)에서 자생하는 풀이다.
따라서 원지라는 당호와 북향하고 있는 두 건물을 생각하면
북녘에 있는 임금님을 사모하는 선비의 깊은 뜻이 담겨있는 것은 아닌가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