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사진/전라도

만추의 전주 한옥마을 풍경~~

홀릭 (HOLIC) 2013. 11. 20. 13:15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한옥마을,

전주 한옥마을,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고

수많은 분들이 찾아가는곳이지요..

전주한옥마을의 가을색을 구경하기위해,

이른 아침 방문해봅니다.

 

 

*.전주 한옥마을은 2011년 국제슬로우시티로 지정된곳입니다..

슬로우 시키는 공해없는 자연속에서

그지역에서 나오는 음식과 문화를 공유하자는

느린삶을 영위하는 도시을 말합니다..

 

*.이른시간인데도 벌써 음식점들이 장사진을,

이름난곳들은 어디서나 문전성시군요..

 

 

*.전통 문화마을답게 민속놀이기구도 있군요.

아빠는 투호놀이,

아들은 굴렁쇠,

엄마는 제기차기,,ㅎㅎ

 

*.한옥마을을 한눈에 보기위해서는

오목대를 올라보는게 좋습니다.

오목대는 고려말 우왕 6년(1380년)에 이성계가

운봉 황산에서 왜군을 무찌르고 돌아가던 중

조상인 목조가 살았던 이곳에 들러 승전을 자축한 곳으로

오동나무와 배나무가 가득해 그렇게 불리워졌다고 합니다..

아래의 누각은 

1900년 고종이 태조를 기리기위해

황제의 어필을 비에 새겨 봉안한 ‘태조고황제주필유지비’.로서

태조 이성계가 머문 곳을 뜻한다고 합니다..

 

*.비석과 오목정을 같이 담아봅니다.

날씨가 흐려지는군요.

발걸음을 재촉해 봅니다..

 

 

*.오목정위에서 주변을 살펴봅니다..

 

*.오목대를 내려와서 한옥마을을 잠시 걸어봅니다.

예쁜 미니버스가 전시된곳도 있더군요.  

금방 소나기라도 내릴 기세입니다..

 

 

*.콩나물 국밥으로 유명한 삼백집 지점도 있군요.

암튼 좀 유명하다는 집앞에는

이렇게 줄을 서있습니다..

 

*.수북히 쌓인 은행잎을 뿌리며 즐거워하는 젊은이도,,

 

*.한옥마을을 걷다보니 성심여자중학교가 보이는군요.

성심여자 중고등학교는

1920년 라크루신부가 이자리에 어학원을 설립했던것이

이학교의 모태라고 합니다.

역사가 깊은 학교이군요..

 

 

 

 

 

 

*.전주 한옥마을,,가을 모습도 참으로 아름답군요..

시간이 많지 않아 경기전부근과 오목대등을 위주로

한옥마을의 가을색감을 구경했지만,,

언제든 느린걸음으로 구경하고 먹거리를 즐기고

막걸리 담그기나 한지체험등 문화체험까지한다면 

즐거움 가득하실듯 합니다..

한옥마을에대한 자세한 소개글은 홈피에서 퍼와 봅니다.

 

을사늑약(1905년)이후
대거 전주에 들어오게 된 일본인들이 처음 거주하게 된 곳은
서문 밖, 지금의 다가동 근처의 전주천변이었다.
서문 밖은 주로 천민이나 상인들의 거주지역으로
당시 성안과 성밖은 엄연한 신분의 차이가 있었다.
성곽은 계급의 차이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존재했던 것이다.
양곡수송을 위해 전군가도(全郡街道)가 개설(1907년)되면서
성곽의 서반부가 강제 철거 되었고,
1911년말 성곽 동반부가 남문을 제외하고 모두 철거됨으로써 전주부성의 자취는 사라졌다.
이는 일본인들에게 성안으로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실제로 서문 근처에서 행상을 하던 일본인들이 다가동과 중앙동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 1934년까지 3차에 걸친 시구개정(市區改正)에 의하여
전주의 거리가 격자화되고 상권이 형성되면서,
서문일대에서만 번성하던 일본 상인들이 전주 최대의 상권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1930년을 전후로 일본인들의 세력확장에 대한 반발로
한국인들은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는 일본인 주택에 대한 대립의식과 민족적 자긍심의 발로였다.
1930년대에 형성된 교동, 풍남동의 한옥군은 일본식과 대조되고
화산동의 양풍(洋風) 선교사촌과 학교, 교회당 등과 어울려 기묘한 도시색을 연출하게 되었다.
오목대에서 바라보면 팔작지붕의 휘영청 늘어진 곡선의 용마루가 즐비한 명물이
바로 교동, 풍남동의 한옥마을인 것이다.